(Book) 기술주 투자 절대 원칙

'기술주'의 가능성과 자격은 다르다
1989년, 피델리티의 펀드매니저 피터 린치는 『전설로 떠나는 월가의 영웅』에서 '10배 주식(ten-bagger)'이라는 말을 남겼다. 개인투자자에게 일상 속에서 기회를 찾고, 인내심을 갖고 내일의 큰 종목을 끈질기게 좇으라는 조언과 함께였다. 린치는 2000년판 서문에서 인터넷도 철도나 전화, 텔레비전처럼 수많은 신생 기업을 낳겠지만 그중 극소수만 살아남아 업계를 지배할 것이라고 썼다. 버거업계를 맥도날드가 장악했듯이, 결국 일류 한두 곳이 판을 가져간다는 얘기였다.
1989년 피델리티의 유명한 포트폴리오 매니저 피터 린치는 개인투자자가 주식시장에서 성공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전설로 떠나는 월가의 영웅』을 출판했다.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가 된 이 책은 여러 훌륭한 기업들과 주식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10배 주식(ten-bagger)'이라는 개념을 소개했다. 10배 주식이란 상당 기간 10배 상승해 시장 수익률을 크게 상회하는 주식을 의미한다. 린치는 개인투자자에게 주변에서 일상적인 투자 기회(예를 들어 던킨 도너츠, 펩 보이즈(pep boys), 리미티드(The limited))를 찾고 인내심을 가지고 "계속해서 내일의 수십 배 주식(big bagger)을 찾으려고 애쓰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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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린치는 『전설로 떠나는 월가의 영웅』 2000년판 서문에서 철도, 전화, 텔레비전 등 다른 주요 혁신처럼 인터넷도 수많은 신생 기업을 탄생시키겠지만, 그들 중 극소수만이 살아남아 업계를 주도할 것이라고 썼다. "버거업계에서 맥도날드가 그랬고 유전 서비스업계에서 슐룸베르거(schlumberger)가 그랬던 것처럼 일류 기업 한두 곳이 업계를 장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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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장의 '인터넷' 자리에 'AI'를 넣어도 뜻이 그대로 통하는 시대다. 그리고 린치가 말한 극소수와 나머지를 무엇으로 가를 것인가 하는 질문이, 최근의 주가 흐름을 보면 그 어느 때보다 선명하게 다가온다.
매번 같은 질문 앞에 섰다
나는 2015년, 딥러닝의 태동과 함께 AI 산업이 막 꿈틀거리기 시작하던 무렵부터 AI 관련 사업을 세우고 키워 왔다. 서비스, 커머스, 데이터와 콘텐츠, 소프트웨어 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도메인에서, 또 상장사와 비상장사를 오가며, 기술을 사업으로 만들고 사업을 숫자로 설명하고 그 숫자를 다시 시장의 언어로 번역하는 일을 해 왔다.
그 과정에서 비상장사에서는 투자자를, 상장사에서는 주주와 시장을 설득해야 했다. 그때마다 같은 질문 앞에 섰다. 기술의 실증도 재무적 실적도 아직 충분치 않은데 회사의 가치와 가능성은 무엇으로 평가받아야 하는가. 기술의 가치는 어디까지 말로 설명할 수 있고, 어디서부터는 숫자로 증명해야 하는가. 쉽지 않지만 지금도 피할 수 없는 물음이다.
돌아보면 그 무렵 출발한 많은 AI 스타트업이 여러 투자 라운드를 거치며 몸집을 키웠다. 그중 살아남은 일부는 기술특례상장에 도전했고, 대다수는 사라졌다. 상장에 성공한 회사 가운데 일부는 그 뒤로도 시장의 기대를 이어 갔지만, 적지 않은 회사는 기대와 현실 사이의 간극을 끝내 메우지 못했다. 그래도 한동안은 시장의 기대감이 유지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최근 코스닥을 보면, 꽤 많은 AI 기술기업의 주가가 크게 흔들리며 동전주로 주저앉는 장면이 이어지고 있다.
지금이 AI의 기술적 가치와 사업적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선명해진 시기라는 점을 생각하면, 역설적인 일이다. 한때는 이름에 AI를 달기만 해도 기술주 대접을 받았다. 시대를 관통하는 말처럼 들리던 그 '기술주'들의 성장은, 이제 기대의 한계에 다다른 걸까. 그 이름을 달았던 기업들 중 일부는 왜 힘을 잃고 추락하는가.
나는 그 이유가 오랜 시간 쌓인 약속과 현실의 괴리에 있다고 본다. 기술을 파는 회사들은 기술의 가능성을 말해 왔다. 그러나 그 가능성이 시장의 성과로 전환되는 속도는 충분하지 않았다. 매출, 고객, 반복 사용, 계약, 마일스톤 같은 증거가 도착하기도 전에 새로운 서사가 먼저 쌓였다. 그 일이 반복되는 사이 시장의 신뢰는 조금씩 닳아 갔다.
서사로 번 밸류에이션, 그리고 청구서
기술을 개발해 파는 회사의 경영자는 익숙한 딜레마에 놓인다.
무엇보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기술부터 완성해야 한다. 그래서 매출 없이 개발이 이어지는데, 이 기나긴 개발이 언제 최적화되어 끝날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그러니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 속 제품은 아직 제품이 되기 전의, 상상 속 제품이다. 시장에 팔아본 적도 없고, 어떤 가격표를 달게 될지, 어떤 행정적 제약을 받을지, 경쟁자의 가격과 새로운 도전에 어떤 전략으로 맞설지 그 무엇도 겪어보기 전이다. 어떤 면에서 그런 기술 기업의 대표들은 경쟁이 시작되기 한참 전에 모든 가능성을 기술 하나에 걸고 걸어 들어가는, 꽤 용감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렇게 검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R&D 비용이 먼저 나간다. 연구개발과 인프라, 시장 초기 침투에 자본이 먼저, 그것도 대규모로 투입된다. 지금까지 사람의 손으로, 혹은 다소 낮은 효율의 방식으로 굴러가던 사업을 압도적인 효율과 대규모의 전파력으로 뒤바꿀 수 있다는 것, 그 가치와 비전을 축으로 사업의 스토리를 짓고 그 스토리로 자본을 모은다.
문제는 그 자본이 성과로 번역되기까지 시간이 걸리고 성공 여부도 불투명하다는 데 있다. 그러는 사이 다시 자본이 필요해지는 때가 온다. 이때 흔히 등장하는 처방이 서사다. 협약 소식, 악수하는 사진, 큰 그림을 먼저 던져 기대를 끌어올리는 IR이다.
하지만 서사로 벌어들인 밸류에이션은 시간이 흐르면 실적이라는 저울 위에 올라선다. 그 시간이 깊어질수록 기업은 서사를 증명한 쪽과 그러지 못한 쪽으로 갈리고, 저마다 다른 값을 인정받는다. 상상했던 값이 맞았는지를 끝내 되묻는 것은 실적이다.
이 문제에 가장 명료한 언어를 건네는 책이 마크 마하니의 『기술주 투자 절대 원칙』이다. 주주에게 어떤 기업이 진짜 기술주인지 가려내는 법을 말하는 책이지만, 경영자에게도 울림이 깊다. 어떤 기업이 되어야 시장의 선택을 받는지를 거꾸로 짚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기술특례상장, 시간 차와 시장 규율의 공백
우리 시장의 구조부터 짚어 보자.
기술특례상장은 2005년 바이오벤처를 대상으로 도입됐다. 이후 2013~2014년 규제 완화로 업종 제한이 사실상 풀리면서 전 산업으로 문이 넓어졌고, 2015년을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활성화됐다. 도입 후 10년간은 이용 기업이 손에 꼽을 정도였지만 이후 빠르게 늘어 2020년 100곳, 2022년 160여 곳을 넘어섰고, 지금은 코스닥 IPO의 주요 경로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제도의 취지는 분명하다. 지금의 재무성과가 부족한 기업이라도 기술력과 성장성을 근거로 상장의 문을 열어 준다는 것이다. 혁신기업에는 꼭 필요한 통로다. 아직 매출과 이익이 충분하지 않더라도 기술이 산업을 바꿀 가능성이 있다면 자본시장에 다가설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기업가치를 매기는 과정에서는 현재 실적보다 미래 추정 실적이 큰 비중을 차지하기 쉽다. 기술성장기업은 상장 후 매출 30억 원 미만 요건이 5년, 법인세비용차감전계속사업손실 요건이 3년 유예된다. 세부 트랙마다 차이는 있어도 부족한 현재의 재무성과를 일정 기간 기다려 준다는 기본 구조는 같다.
이 유예는 필요한 배려다. 그런데 동시에 재무성과를 검증하는 시점을 뒤로 미루는 구조이기도 하다. 그 결과 자본이 실제 매출로 전환되고 있는지보다 기술 서사와 미래 추정치에 더 무게를 싣게 되는 유인이 생긴다. 흔적은 숫자로 남는다. 한 보도에 따르면 2023년 특례로 상장한 32곳 가운데 스스로 제시한 매출 추정치를 달성한 곳은 단 한 곳뿐이었다.
파두 사례가 그 균열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2023년 8월 상장 당시 파두는 그해 예상 매출로 1,200억 원대를 제시하며 1조 원이 넘는 몸값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그해 11월 2분기 매출이 5,900만 원에 그쳤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주가가 급락했다. 서사로 번 몸값이 실적 앞에서 되돌아온 것이다.
물론 한쪽만 보아서는 안 된다. 기술특례상장이 혁신기업에 자금 조달의 문을 열어 준 순기능은 분명하다. 공모가 대비 시가총액이 수십 배로 뛴 알테오젠 같은 사례도 있다. 자본시장연구원의 분석 역시 제도 전체의 장기 주가성과가 우려만큼 나쁘지는 않았다고 본다. 다만 같은 분석은 상당수 기업이 상장 이후에도 기술력을 매출로 전환하지 못했고, 재무성과보다 R&D와 기술 향상에 대한 기대로 시장 평가를 받은 측면이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니 제도 전체가 실패했다고 볼 일은 아니다. 전환에 실패한 개별 기업들의 꼬리 위험이 커졌다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그러고 보면 기술특례상장을 통과했다는 사실도 공개시장에서 기술주로 검증받을 기회를 얻었다는 의미일 뿐이다. 기술주라는 타이틀까지 쥐여준 것은 아니라는 점을, 지금까지의 성적표가 보여 주고 있다.
주가는 어떻게 움직는가?
마하니가 소개하는 월가의 경험칙에 따르면, 개별 주가의 단기 변동은 대략 회사와 섹터와 시장이 3분의 1씩 나눠 갖는다. 변동의 3분의 1은 그 회사의 펀더멘털에서, 3분의 1은 그 회사가 속한 섹터에서, 나머지는 전체 시장에서 온다는 것이다. 개인투자자가 개별 종목의 펀더멘털만 보고 베팅했다가 손실을 보는 이유가 여기 있다. 눈앞의 주가 움직임 가운데 그 회사와 직접 관련된 몫은 3분의 1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투자자들이 간혹 주식시장에서 100퍼센트 확실하게 손실을 입는 이유 중 하나는 개별 주식의 주가 움직임에서 많은 부분이 그 주식의 특정한 펀더멘털과는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이는 시장과 관련이 있다. 주가 변동의 3분의 1은 그 주식의 펀더멘털 때문이고, 3분의 1은 그 주식이 속한 섹터 때문이며, 나머지 3분의 1은 전체 시장 때문이라는 것이 월가에서는 어느 정도 진리로 통한다. 지난 25년간 나는 이를 경험해 봤고 이 말이 정확하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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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중요한 것은 그다음이다. 단기 변동이 어떻든 장기적으로 주가의 수준을 지배하는 것은 펀더멘털이다. 페이스북, 구글, 넷플릭스, 아마존 같은 최고의 기술주도 특정 구간에서는 20~40% 조정을 여러 번 겪었다. 그래도 길게 보면 실적이 주가를 제자리로 데려갔다.
그래서 마하니는 실적 발표를 겨냥한 단기 매매를 경계한다. 실적과 가이던스를 어느 정도 짐작한다 해도 시장이 그 결과에 어떻게 반응할지는 알 수 없어서다. 그가 인용한 한 노련한 헤지펀드 애널리스트의 말이 이를 압축한다. 결과는 미리 알 수 있어도 주가의 반응은 끝내 알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질문은 너무 자주 "실적 발표 직후 주식을 팔아서 깔끔한 단기 수익을 얻고 싶은데, 그러려면 실적 발표 전에 XYZ 주식을 사야 할까요?"라는 의도를 담고 있었다. 내가 이 질문을 받기 싫어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실적 발표를 이용한 단기 투자는 종종 펀더멘털에 기초한 투자라기보다는 예측에 기초한 투자인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투자자는 기업 실적이 월가의 추정치를 밑돌지, 비슷한 수준으로 나올지, 혹은 뛰어넘을지 정확하게 예측해야 할 뿐만 아니라, 실적 추정치에 대한 판단도 정확히 내려야 한다. 그러니까 '추정치를 상회하는 실적'이 주가를 상승시키기에 충분한 정도인지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주식의 단기적 움직임은 기업 펀더멘털의 중요한 변화와 관계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설사 주가 변동이 분기 실적 발표처럼 기업의 펀더멘털과 관련된 중요한 이벤트와 바로 근접해서 일어났다고 해도 주가는 종종 펀더멘털과 괴리된다. (중략)
셋째, 특히 개인 투자자가 한 분기 실적만 놓고 베팅한다면 데이터 측면에서 엄청나게 불리한 상태로 투자하게 되는 셈이기 때문이다. 전문적인 기관 투자자는 종종 비용을 지불하고 신용카드 데이터, 제3자 웹 트래픽 데이터, 사용자 설문 조사, 전문가 네트워크 등 개인 투자자가 구하지 못하는 자료에 접근한다. (중략)
넷째, '분기 실적 발표를 이용한 투자 판단'은 본질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노련한 헤지펀드 애널리스트 중 한 명은 "실적과 가이던스는 어떻게 될지 미리 알 수 있지만 주식이 그 결과에 어떤 식으로 반응할지는 여전히 알 수 없다"고 단언했다.
이런 이유로 나는 개인 투자자에게 실적 발표를 이용해 투자하지 말라고 조언하고 싶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단기적 주가 변동성에 주의를 빼앗기지 말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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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적으로 펀더멘털이 주가를 움직인다. 그리고 고성장 기술주의 경우 가장 중요한 펀더멘털은 매출이다. '매출 성장률 20퍼센트의 법칙'이 있다. 매출 성장률을 꾸준히 20퍼센트 이상 달성하는 기업은 단기 수익성에 크게 상관없이 주식 수익률이 높을 가능성이 높다. 5년간 매출 성장률을 20퍼센트 이상 꾸준히 올릴 수 있는 기업은 S&P500 구성 종목 중 2퍼센트뿐이지만, 이 2퍼센트가 시장을 크게 상회하는 수익률을 낸다는 것이다. 따라서 좋은(high-quality) 고성장 기술주임을 알려주는 펀더멘털 요소 중 하나는 꾸준히 20퍼센트 이상 매출 성장률을 보이는 것이다. 이것을 찾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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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자에게 이 통찰의 값어치는 분명하다. 회사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은 펀더멘털이지 섹터와 시장 심리가 아니다. 바람을 잡아 주가 전체를 띄우려는 시도는 애초에 이기기 어려운 판을 상대하는 일이다. 반대로 정직하게 쌓은 펀더멘털은 시간이 지나 장기 주가 수준으로 돌아온다. 주가를 좇을 게 아니라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펀더멘털을 좇아야 한다는 것, 이것이 이 대목이 경영자에게 주는 원칙이다.
기술주의 조건 : 매출
그 펀더멘털의 정체를 마하니는 단순하게 규정한다. 피터 린치가 투자자에게 이익을 보라고 했다면, 마하니는 기술주 투자자에게 매출을 보라고 말한다. 기술주에서 가장 중요한 세 가지 재무지표는 매출, 매출, 그리고 매출이라는 것이다.
『전설로 떠나는 월가의 영웅』에서 피터 린치는 투자자들에게 세 가지 핵심 재무지표에 집중하라고 조언했다. 바로 이익, 이익, 이익이다. 나는 기술주 투자자에게 이익과는 다른 세 가지 재무 지표에 집중하라고 조언하고 싶다. 바로 '매출', '매출', '매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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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준선은 매출 20% 성장의 법칙이다. 매출 성장률을 꾸준히 20% 이상 유지하는 기업은 단기 수익성과 무관하게 높은 주식 수익률을 낼 가능성이 크다는 경험칙이다. 마하니는 5년간 이 성장률을 지켜내는 기업이 S&P500 구성 종목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지만 바로 그 일부가 시장을 크게 상회하는 성과를 낸다고 설명한다.
단서는 있다. 수익성 없는 성장은 무의미하다. 그럼에도 기술주에서 매출 성장이 중요한 이유는 오늘의 매출이 내일의 이익을 예고하기 때문이다. 매출이 커지면 고정비 레버리지가 작동하고, 제품과 시장이 맞아떨어졌다는 신호가 생긴다. 책은 좋은 고성장 기술주의 조건으로 끊임없는 제품 혁신, 큰 시장 안의 작은 점유율, 고객 중심성, 검증된 경영진, 성장률 대비 밸류에이션을 꼽는다.
매출은 투하 자본에 대해서는 후행지표지만 이익과 현금흐름에 대해서는 선행지표다. 자본을 먼저 넣고 제품을 만들고 시장에 침투한 다음에야 매출이 찍힌다는 점에서 매출은 자본 투입의 결과다. 그러나 이익과 현금흐름의 관점에서 보면 매출이 먼저다. 매출이 자라야 고정비가 흡수되고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며 이익의 가능성이 열린다.
그래서 아직 매출이 작은 회사라면 시장은 그 전 단계의 증거를 요구한다. 활성 사용자와 증가율, 리텐션과 코호트 잔존, 순매출유지율(NRR), 유입에서 전환까지의 퍼널 같은 지표들이다. 이런 지표들이 "곧 성장한다"는 기대를 "지금 전환되고 있다"는 증거로 바꿔 준다.
소프트웨어와 구독형 비즈니스에서는 성장과 수익성의 균형을 'Rule of 40'으로 점검하기도 한다. 매출 성장률과 이익률의 합이 40% 이상인지 보는 실무적 경험칙이다. 다만 모든 기술기업에 통하는 회계 공식이라기보다 성장의 질을 보는 보조 렌즈에 가깝다.
전환의 증거를 언제나 매출로만 판단하는 것은 아니다. 플랫폼이나 커머스, SaaS처럼 반복 매출이 정상 지표인 기업이 있는가 하면, 바이오와 딥테크처럼 가치가 임상 성패나 기술수출, 마일스톤 같은 이벤트에 달린 기업도 있다. 후자에게 전환의 증거는 당장의 매출이 아니라 파이프라인의 진척과 검증된 계약일 수 있다. 무엇이든, 결국 저자가 찾는 것은 매출 또는 그 매출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선행지표를 가지고 매출의 성장을 트래킹 할 수 있게 하라는 것이다.
성장의 증거 없는 AI주는 기술주인가?
이 잣대를 들이대면 시의적인 질문이 하나 떠오른다. 매출도, 그 선행지표도 뚜렷하지 않은 AI주를 기술주로 볼 수 있는가. 바꿔 말하면, 그 두 가지를 뺀 나머지로 회사를 설명하려는 기업을 기술주라 부를 수 있는가 하는 물음이다.
단정하기는 어렵다. 시장은 무수익 성장기업에도 기꺼이 값을 매겨 왔다. 아마존이 그랬다. 서사가 시간을 벌어 주고 그사이 실제 전환이 완성되는 경우도 있다. 주가의 방향은 누구도 장담할 수 없고, 지표를 다 보고도 전문가가 틀리기도 한다.
그래서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이렇다. 전환의 증거가 아직 보이지 않는 종목은 기술주가 아니라기보다, 아직 기술주로 평가받을 근거가 부족한 종목이다. 그리고 끝내 전환이 도착하지 않는 서사는 오래가지 못한다.
이 구분은 테마 장세를 읽는 열쇠이기도 하다. 테마 장세에서는 지수가 소수 대형주 쏠림으로 올라가도 그 바깥의 개별 종목은 오히려 밀릴 수 있다. 상당수 종목이 실제 AI 매출이나 고객 지표가 아니라 사업 설명에 AI라는 단어가 들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테마주로 묶이기도 한다.
같은 제도 안에서도 길은 갈린다. 파두가 추정 실적의 붕괴를 보여준 반면, 알테오젠은 기술수출 계약과 마일스톤이라는 검증 가능한 전환 증거를 보여줬다. 둘을 가른 것은 서사의 화려함이 아니라 증거의 실재였다.
AI의 기술적 가능성은 과거보다 커졌다. 그렇다고 시장이 모든 AI 기업을 기술주로 인정해야 할 이유는 없다. 기술의 가능성과 기술주의 자격은 다른 문제다. 가능성은 설명할 수 있지만 자격은 증명해야 한다. 그러한 일들이 상장 이후의 시장에서 실적 공개라는 내용으로 숨김없이 보여지고 있는 것이다.
기술기업의 경영자의 관점에서
많은 기술기업의 경영진들은 자사가 기술주로서 회사가 포지셔닝하고 인정 받기를 원한다. 그렇다면 분명하게 관점을 잡을 필요가 있다.
기술기업은 결국 자본을 성과로 바꾸는 일을 한다. 자본이 들어가 제품이 되고, 제품이 시장을 만나 수익으로 나온다. 그 변환이 얼마나 잘 되느냐가 회사의 값이지, 그 과정을 감싼 이야기가 값은 아니다.
매출 성장세는 아직 이익으로 다 드러나지 않은 그 수익률의 관측 가능한 대리지표다. 매출이 자란다는 것은 자본이 옳게 쓰였고 제품이 시장을 먹고 있으며 고객이 실제로 반응하고 있다는 외부 증명이다. 반대로 자본은 타는데 매출도 그 선행지표도 없다면, 그것은 침투에 실패하고 있다는 신호로 읽힌다.
그래서 시장과 나누는 대화의 언어도 매출, 또는 매출로 이어질 검증 가능한 지표여야 한다. 실적 없는 보도자료와 협약 소식만으로는 시장과 제대로 소통하기 어렵고, 하락장에서 주가를 방어하기도 어렵다. 서사는 통제 밖의 섹터와 시장 심리를 잠깐 흔들 수는 있어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펀더멘털을 키우지는 못한다. 기대로 끌어올린 주가는 실적이 도착하는 순간 그 자리로 되돌아올 위험을 스스로 키운다.
경영자를 위한 시사점을 네 가지로 정리해 본다.
첫째, 주가가 아니라 전환을 경영해야 한다. 통제 밖의 섹터와 시장 심리 대신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매출과 고객 지표에 자원을 집중하는 것이다.
둘째, 기대를 증거로 번역해야 한다. 매출이 아직 작다면 서사 대신 선행지표로 전환이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줘야 한다. 업종에 따라 그 증거는 매출일 수도, 검증된 계약이나 마일스톤일 수도 있다.
셋째, 성장의 질을 함께 봐야 한다. 적자를 태워 산 매출은 협약 사진만큼이나 쉽게 반증된다. 단위경제(unit economics)가 받쳐 주는 성장이라야 한다.
넷째, 시장의 언어로 말해야 한다. 커뮤니케이션의 단위를 협약이 아니라 성장률과 고객 지표로 옮기는 것이다.
『기술주 투자 절대 원칙』은 투자자를 위해 쓰인 책이다. 그러나 기술기업 경영자에게도 이 책은 자본 배분과 시장 커뮤니케이션의 지도로 읽힌다. 기술주는 라벨이 아니다. 투하된 자본이 매출과 고객 지표로, 또는 그에 준하는 검증 가능한 증거로 전환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회사가 기술주다.
그 한 문장을 얻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서가에 둘 값을 한다. 그래서 나는 시장과 오래 대화하고 싶은 경영자에게 이 책을 권한다.
참고 문헌 및 자료
단행본
- 마크 마하니, 『기술주 투자 절대 원칙』(원제 Nothing But Net), 이주영 옮김, 리더스북, 2024.
- 피터 린치·존 로스차일드, 『전설로 떠나는 월가의 영웅』(원제 One Up on Wall Street), 이건 옮김, 국일증권경제연구소.
연구 보고서
- 이석훈, 「특례상장 기업의 성과 분석과 시사점」, 자본시장연구원 이슈보고서 22-16, 2022.
- 김기용·고영희, 「성장기업 지원제도 개선과 활성화 효과 연구: 코스닥 기술특례상장제도를 중심으로」, 『정책개발연구』 23권 1호, 2023.
제도·통계
- 한국거래소 기업공시채널 KIND, 기타 상장통계(기술성장기업).
- 「코스닥 기술특례 상장사 15년만에 100개…바이오가 76개 '최다'」, 파이낸셜뉴스, 2020. 10. 6.
- 「[특례상장 바이오] K-바이오 성장 '마중물' 됐다」, 비즈워치, 2022. 10. 31.(누적 166개사·바이오 비중)
- 「투자자 울리는 기술특례 상장 제도…개선 방안은?」, 이코리아, 2024. 6. 11.(2023년 특례상장 32곳 중 매출 추정치 달성 1곳, 관리종목 지정 유예 매출 5년·손실 3년)
파두 사례 관련 보도
- 「'파두 쇼크'에 뭇매 맞는 '기술특례 상장'…대체 뭐길래」, 한국경제, 2023. 11. 19.(2분기 매출 5,900만 원)
- 「부실한 기술특례 상장 잔치에 개미들은 '피눈물'」, 시사저널, 2024. 4. 23.(2023년 예상 매출 1,202억 원, 시가총액 1조 원)
- 「'뻥튀기 상장' 의혹 파두 첫 공판…"사기 상장" vs "예측 실패"」, 디일렉, 2026.(증권신고서 예상 매출 1,188억 원, 2023년 실제 매출 225억 원, 2023년 8월 상장)
성과 사례
- 「기술특례상장 시행 15년 바이오기업 76곳 상장…기술이전 실적 12조 8,000억 원」, 메디게이트뉴스, 2020. 10. 7.(알테오젠·제넥신·레고켐바이오 공모 대비 시가총액 30배 이상 상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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